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미 헨드릭스 (문단 편집) == 평가와 영향력 == >지미 헨드릭스는 틀림없이 록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주자다. 헨드릭스는 일렉트릭 기타의 범위와 어휘를 음악가가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확장했다. 그의 무한한 추진력, 기술력, 그리고 창의적인 적용은 로큰롤의 소리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 >― [[로큰롤 명예의 전당]] 지미 헨드릭스는 오늘날 대중이 [[일렉트릭 기타]]라는 악기에서 기대하는 거의 모든 소리를 사실상 혼자서 개발해온 인물이다. 음악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기억되고 있으며, 데뷔한 이래 장장 50년이 넘어가는 현재까지도 대중음악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일렉트릭 기타]]와 [[기타리스트]]의 역사는 이 사람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 확고하게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음악 분야에서 '드러머'의 [[존 본햄]]과 함께 각 분야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물을 선정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며, 현 시점 거의 모든 리스트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위에 선정되었다.[* 게다가, 지미 헨드릭스의 경우에는 척 베리, 비비 킹같은 본인의 선배들보다도 더 높은 위치에 랭크된다. 즉, 일렉트릭 분야 뿐만이 아닌 기타라는 악기가 생긴 뒤에 등장한, 블루스 록부터 헤비메탈까지의 모든 장르의 기타리스트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 이런 엄청난 영향력 때문에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 [[제프 벡]]으로 이루어진 소위 "세계 3대 기타리스트"를 반박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3대 기타리스트만큼이나 훌륭한 록 기타리스트라고 불리는 [[데이비드 길모어]], [[키스 리처즈]], [[조지 해리슨]], [[에디 밴 헤일런]], [[스티비 레이 본]] 등은 어디까지나 장르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기 때문에 우위를 가르기 힘들지만, 지미 헨드릭스만큼은 3대 기타리스트에 비해 음악적 영향력과 실력 등에서 확실한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반박의 근거로 사용된다.] 일렉트릭 기타는 1950년대 당시 [[어쿠스틱 기타]]의 부족한 소리를 메꾸기 위해 발명된 악기였고, 따라서 오랫동안 '마이크 단 어쿠스틱 기타'나 '소리 큰 어쿠스틱 기타'라는 취급이 강했다. 대중적으로 처음 성공한 일렉트릭 기타를 만든 [[펜더]] 회사 역시 록 보다는 깔끔한 소리가 요구되는 컨트리 기타리스트를 위해서 작업했다. 일렉트릭 기타 특유의 소리에 대해 연구가 많이 부족했고, 악기가 발명된지 10년이 넘어가도 이미 존재하던 어쿠스틱 기타의 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당시 록의 선두주자라고 불리던 [[엘비스 프레슬리|엘비스]]나 [[비틀즈]]를 들으면 기타의 대중적인 소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지미 헨드릭스. 현대 록밴드에서 요구되는 '더티/크런치' 사운드는 그가 선호하는 [[Marshall|마샬]] 앰프의 오버드라이브에서 비롯된 것이며, 당시에 막 개발되었던 [[퍼즈]](Fuzz), 와우 페달(Wah Pedal), 유니바이브(Univibe) 등의 [[기타 이펙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개성적인 일렉트릭 기타만의 톤(음색)을 만들어냈다. 이후 톤 메이킹[* 연주자만의 개성적인 톤을 만드는 것.] 실력도 모든 일렉트릭 기타리스트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는 연주 중 [[하울링#s-2|피드백]] 사운드나 격렬한 아밍으로 음정을 벗어난 음, 기타를 앰프 스피커에 부딪히거나 마이크 스탠드에 비벼서 생기는 소리 ~~기타가 박살나는 소리~~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며, 정확한 음이 아닌 노이즈도 강렬한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레코딩에서도 환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이키델릭풍의 데뷔 앨범 '[[Are You Experienced]]'는 록 음악 내에서 손에 꼽히는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이를 증명하듯이, 2020년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에서 30위에 선정되었다. 비록 2012년 15위에서 2020년 30위로 너프되긴 했지만, 2020년 개정판에서는 록 앨범 대부분이 평가가 낮아졌음을 감안하면, 최고의 록 음악 명반이라는 점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블루스]]를 바탕으로 했지만 끝없는 상상력을 실천하면서 더욱 더 공격적이고 거칠게 발전시켰는데, 이러한 시도와 결과물은 블루스를 넘어 [[록 음악]], 특히 본인은 하지 않은 후대의 [[사이키델릭 록]], [[하드 록]], [[블루스 록]], [[헤비 메탈]] 같은 여러 장르들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하드 록과 헤비메탈의 정체성 중 하나인 '귀를 거칠게 찌르는 고주파의 굉음으로 청중들을 압도하는 사운드를 뿜어내는 기타리스트의 음악'이라는 정의는 훨씬 늦게 자리잡고, 지금과는 다른 형태였을지도 모른다. 왼손잡이였던 지미 헨드릭스는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뒤집어서 연주했었는데,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기타와 한 몸이 된 듯 신기에 가깝게 연주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지미 헨드릭스는 1960년대에 새로운 기타 연주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기타를 넘어 대중음악에도 막대한 영향을 준 위대한 아티스트들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다시 말하자면, 현시대 일반인들이 일렉트릭 기타하면 떠올리는 '좡좡좡' 거리는 거친 찢어질듯한 소리를 이펙터 사용을 통해 거의 최초로 도입하고 이를 전기 소음이 아닌 음악의 영역으로 끌어온 다음, 이런 소음을 가지고 어떤 음악을 만들지까지 비전을 만들어놓은 인물. 이러한 사운드는 지미 헨드릭스를 통해 음악으로 새로 탄생했고 그의 시도에 영감을 얻은 동시대 기타리스트와 후배들이 발전시켜 나가면서, 일렉트릭 기타로만 할 수 있는 장르까지 새롭게 생겨나면서 이제는 상술한 어쿠스틱 기타의 그늘에서 벗어나 완전한 독자적인 악기로 독립할 수 있었다.[* 지미 헨드릭스 이전의 일렉 기타 소리는 지금의 재즈 기타, 초창기의 일렉트릭 블루스, [[엘비스 프레슬리]]나 [[척 베리]] 등의 초기 로큰롤 사운드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진취적인 음악으로 인하여 비단 일렉트릭 기타 뿐만이 아닌, 1960년대 이후 대중음악의 전체적 역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개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27년이라는 그의 짧은 일생 중 마지막 4년 동안[* 다시 말하자면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결성 시기인 1966년부터 사망할 시기인 1970년.]에 모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27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남들보다 늦은 15세[* 한국 나이로 중3에 기타를 처음 배운 것이다. 일반인 기준으로는 아주 늦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문제는 지미 헨드릭스는 유명 기타리스트, 아니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라는 것. 대부분의 유명 기타리스트들은 더 이른 나이에 기타를 잡기 시작한다. 예외적으로 [[잭 화이트]]의 경우 지미와 비슷한 나이에 기타를 잡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하여 테크닉을 내세우는 연주보다는 간단하고 중독성 있는 리프를 개발하는 데 능하다. 그런데 지미의 연주는 간단한 리프보다는 새로운 기법과 화려한 연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단 것을 감안하면... 만약 10년만 더 살아있었어도 그의 작품 세계에 맞는 어마어마한 음반들이 더 많이 나왔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에 기타를 정식으로 시작하였으며, 즉 Are You Experienced를 만든 것은 그가 기타를 정식으로 배운 지 9년이 된 해이다. 다른 유명 기타리스트들이 대부분 10세 전후에 기타를 처음 접한 것을 감안하면 지미 헨드릭스가 얼마나 천재인 지 알 수 있는 부분.[* 대부분 기타리스트들은 최소 10년 이상의 구력을 가지고 나서 서서히 메인스트림에 올라오며, 20년은 쳐야지 기본적으로 세계 제일의 수준까지 가는 것을 감안하면 9년만에 일렉트릭 기타라는 악기의 거의 모든 기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지미 헨드릭스는 단순히 기타라는 악기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전체의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위대한 천재들 중 하나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tZoIxlRC32k)]}}} || || {{{#fff Jimi Hendrix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Live)}}} || 연주력 자체가 뛰어났던지라 다른 뮤지션의 곡들을 [[커버]]하는 것에도 매우 능하였는데, 원곡 그대로 카피하듯 커버하기보다는 자기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여 독창적으로 커버하곤 했다.[* 사실 훌륭한 커버란 그런 것이다. 만일 그냥 똑같이 복사해내는 것에 머문다면, 데뷔 전 아마추어 밴드의 연주 연습은 될 수 있어도 기성 아티스트로서는 타 뮤지션의 흉내내기에 불과하니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의 라이브 음반을 들어본다면 다른 뮤지션들이 낸 곡들과 그만의 스타일로 해석한 라이브 곡들을 비교해서 들어보는 재미도 있다. 위의 동영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페퍼상사]]에 수록된 첫 곡인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를 자신 만의 하드록 스타일로 커버했다. 심지어 나온지 3일 만에 저러한 완성도 높은 연주를 보여줬다! 실제로 원곡자 [[폴 매카트니]]도 이를 듣고선 지미의 뛰어난 재해석 및 독창적인 소화 능력을 칭찬하였다.[* 참고로 폴 매카트니는 지미 헨드릭스가 데뷔 전 영국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할 때부터 이미 그의 재능을 간파하고 눈여겨 본 뒤 지미의 데뷔 및 미국 공연 진출 등에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지미의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커버 공연에 관련된 또 하나의 일화가 있는데, 지미가 이 곡을 연주할 때 본인 연주의 특성상 과격할 정도로 트레몰로 암을 구부렸다 폈다 하는 연주를 선보였다. 문제는 워낙 과격하게 한 탓에 기타의 튜닝이 완전히 나가버렸고, 무엇보다도 이 페퍼 상사 커버곡이 그 공연의 첫 번째 곡이었다는 것. 이에 공연장에 있던 관객들은 "이제 뭘 어떻게 할 작정이지?"라는 생각으로 지미를 보았고, 지미는 관객석에 있던--최선을 다해 숨던-- [[에릭 클랩튼]]을 불러 "나 이거 줄 좀 맞춰주라."라는 농담을 던졌다고. [[https://youtu.be/o6IXZVYvu2w|참조]]] 또한, [[밥 딜런]]의 곡인 'All Along The Watchtower'는 오히려 원곡보다도 지미 헨드릭스의 커버 버전이 더 유명하다.[* 이로 인해서 밥 딜런은 후일 공연에서 그 곡의 지미 헨드릭스 버전을 부르기도 했다.] 여러 매체에서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의 순위를 정하는 자리를 가질 때 2위부터는 순위 변동이 다소 잦지만[* 당장 제일 존경받는 기타리스트들 중에선 앞 세대 중에선 [[비비 킹]], [[척 베리]] 등이 있고, 동 세대 중에서만 따져도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 [[제프 벡]], [[키스 리처즈]], [[피트 타운젠드]] 등이 있다. 물론 이분들 역시 지미 헨드릭스를 제외하고 보자면 올타임 레전드로 평가받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들이다.] 1위는 항상 지미 헨드릭스.[* 당장 맨 위에 있는 수상 이력만 봐도 알 수 있다. 모든 매체에서 선정한 기타리스트 순위에서 항상 1위에 꼽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사실상 0위로 평가받기도 한다.] 무엇보다 흑인이 아직 많은 차별을 받던 시대[* 물론 40년대 후반에 [[재키 로빈슨]]의 메이저리그 성공과 60~70년대에 [[무하마드 알리]]가 복싱계를 호령한 덕에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많이 호전되긴 했지만, 당시에도 많은 차별을 받던 건 사실이다. 실질적으로 미국, 그리고 전 세계의 인종차별은 80년대 [[마이클 잭슨]]의 등장과 [[Thriller]] 앨범 발매 이후부터 제대로 나아졌다.]와 브리티시 인베이전으로 인해서[* 여담으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매니저였던 채스 챈들러 역시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주역들 중 하나였다.] 영국이 음악 시장을 주로 점령하고 있던 시대에 현재 올타임 레전드로 평가받는 당대 최고의 영국계 백인 밴드인 [[롤링 스톤즈]], [[비틀즈]]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스타덤에 오른 흑인 미국 아티스트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가?]] 사실 지미 헨드릭스는 기존의 흑인 블루스 연주자나 팬들한테는 상당히 멸시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유는 '흑인 음악인 [[블루스]]를 가져다가 백인 음악이었던 [[록 음악]]에 결합해 백인에 아첨하는 음악만 만들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1960년대의 블루스 리바이벌 당시 고전 블루스를 한창 재해석하던 [[에릭 클랩튼]], [[피터 그린]] 등의 영국의 기타리스트들을 정통 블루스 음악가들은 '테크닉은 있지만 블루스의 느낌을 재현하지 못하는 외국인의 모방'으로 평가받았고, 이는 당시 백인 블루스 아티스트들에게는 일종의 컴플렉스로 작용했다. 실제로도 많은 평론가들이 이 당시의 브리티시 블루스를 고전 흑인 블루스에 영향을 받아 나타난 별개의 장르로 구분한다. 이 때문에 흑인들의 선천적 감성과 필을 모르는 백인들이 지미의 시도를 자신들의 눈으로 해석해 블루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탄생한 것이 블루스와 록의 결합이었고, 이를 갈고 닦은 것이 지금의 록 음악, 나아가 [[프로그레시브 록]],[[사이키델릭 록]],[[하드 록]],[[헤비메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백인 블루스계의 노력은 미국의 정통 블루스의 입장에서는 흑인 블루스 음악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영국인들의 변화구, 사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미 헨드릭스는 미국 출신의 흑인 기타리스트였음에도 정통의 블루스 어법 뿐 아니라 자신만의 창의적인 어법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블루스 록 음악을 완성했다. 이는 [[에릭 클랩튼]]을 위시로 한 영국 블루스 록 음악계에서는 엄청난 호응을 얻었지만, 미국의 정통 블루스 음악인들의 반응은 영 좋지 못했다. 당시 흑인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듣는 인물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팬들은 대부분 백인이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업적 덕분에 블루스와는 1도 관계 없는 뿌리에서 태어난 영국 바깥의 클래식계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같은 후대 음악가에게 있어서도, 지미 헨드릭스가 일렉트릭 기타라는 악기를 든 이상 [[안토니오 비발디]],[[니콜로 파가니니]]같은 거장의 사이에 자리잡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미 헨드릭스는 이러한 평판을 어느 정도 신경쓰고 있었다고 하며,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해체 이후 흑인 멤버들로 구성된 밴드 오브 집시스를 결성하며 보다 [[펑크(음악)|펑크(Funk)]]와 [[소울 음악]]등 흑인음악에 경도된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지미 헨드릭스가 사망하면서 밴드 오브 집시스의 이후 행보는 영원히 미완으로 남게 되었다. 이후 위와 같은 비판적인 시각은 점차 줄어들었는데, 일단 지미 헨드릭스 이전의 정통 블루스 뮤지션들은 이미 노환으로 사망했거나 음악계를 은퇴한 것도 있고, 지미 헨드릭스가 후대에 남긴 영향력이 워낙 거대하기에 위와 같은 비판 의견이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에 가깝다. 실제로 헨드릭스가 일부에서 이러한 멸시를 받을 무렵에도 이미 [[비비 킹]], [[마일스 데이비스]], [[조지 클린턴]]과 같은 흑인 음악의 거장들은 창의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 헨드릭스의 혁신성을 알아보고 그에 영향받은 음악을 선보였고, 이후 [[재즈]], [[소울 음악]], [[펑크(음악)|펑크]] 등 흑인 음악계도 지미 헨드릭스의 영향을 받아들여 큰 발전을 이룩했다. 그래서 현재는 미국/흑인 음악계에서도 전설로 평가받는다.[* 비슷한 시기의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와 함께 소울이나 힙합 쪽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다. [[야신 베이|모스 뎁]]은 그의 곡 'Rock & Roll'에서 헨드릭스를 언급했고 [[커먼]]은 Jimi Was Rock Star라는 헌정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뮤지션으로써 '''흑백의 통합을 이뤄낸 인물중 하나다.''' 백인으로써 흑인음악을 메인스트림에 받아들일 수 있게한 엘비스와는 반대로 흑인으로써 한계를 넘어선 음악을 해, 백인들의 음악을 진보시킨 인물. 그러니 음악의 한계를 넘고 문화 통합을 이끌어낸 사람을 단순한 뮤지션이라고 보면 안된다. 그는 일렉트릭 기타라는 기계로 하나의 컬처를 새로 만들어낸 문화의 선도자였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헨드릭스를 통해 하드 록, 헤비메탈의 정체성이 확립된 이후로 정작 헨드릭스의 뒤를 이을 흑인 하드 록, 헤비메탈 뮤지션이 거의 나오지 못했다는 것. 지미 헨드릭스 이후에 나왔던 전설적인 흑인 음악 뮤지션들은 대다수가 [[펑크(음악)|펑크(Funk)]]나 [[디스코]], 더 길게 보자면 [[컨템퍼러리 R&B|R&B]]나 [[힙합 음악|힙합]] 쪽의 음악을 했다. 그로 인해 하드 록, 메탈씬은 다소는 백인 위주의 문화로 다시 분리되었고 아직까지도 지속되는 중이다. 기타 실력이 너무나 부각되어 살짝 가려진 감이 있지만, [[프론트맨]]으로서의 역량 또한 최고 수준이라 평가받으며, [[프레디 머큐리]], [[믹 재거]], [[짐 모리슨]] 등과 함께 록 역사상 최고의 프론트맨으로 평가받는다. 공연때마다 수준급의 퍼포먼스를 유감없이 보여줬으며, 그 유명한 몬터레이 콘서트나 [[우드스톡 페스티벌]] 등에서 그의 퍼포먼스와 무대 매너를 잘 확인 할 수 있다. 이로 인해서 빌보드 선정 25대 위대한 록 프론트맨에서 '''3위'''에 오른적 있다.[[https://www.billboard.com/photos/6721847/best-rock-singers-of-all-time|#]][* 여담으로 1위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며 2위는 [[프레디 머큐리]]이다. 위 둘이 역사상 최고의 라이브 공연을 많이 선사했던 전설적인 프론트맨임을 감안하면 지미 헨드릭스 역시 위대한 프론트맨임을 알 수 있다.] 그에 대한 평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기타의 본좌로 꼽히는 인물이다. 동시에 대중음악의 역사에 있어서도 제일 위대한 거목 중 하나로 꼽힌다. 그가 사망한 지 50년이 넘어가는 현재까지도 일렉트릭 기타의 주요한 주법들 중 대부분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으니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에 항상 1위로 선정될 만도 하다. 굳이 기타에 국한되지 않고 음악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줬는데, 그의 주 장르인 블루스, 사이키델릭 록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재즈 뮤지션[* 예를 들자면 그 [[마일즈 데이비스]]. 심지어 마일즈 데이비스는 1926년생으로 지미보다도 나이가 무려 16세나 많은 데다가 지미가 유년기였던 1959년, 이미 [[Kind of Blue]]라는 역대급 모달 재즈 명반을 발매한, 이미 전설의 위치에 오른 인물이었다.]들도 그의 독특한 화성 방식이나 주법에 영향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후대 등장한 하드 록, 헤비메탈이라는 장르는 헨드릭스를 통해 지금의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따라서 사실상 후대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자는 장르를 불문하고 무조건 그의 발자취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데, 지미 헨드릭스가 현역이던 시절 [[에릭 클랩튼]][* 지미 헨드릭스랑 생전에 친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사람은 블루스 록의 선구자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에 지미 헨드릭스를 제외하고 항상 들어가는 수준의 전설이다.], [[제프 벡]], [[더 후]]의 [[피트 타운젠드]], [[퀸(밴드)|퀸]]의 [[브라이언 메이]][* 대학교 시절, 스마일 소속 당시. 이 때에는 퀸이 아직 결성되기 전이다.] 등 지금에서는 올타임 레전드라고 평가받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들조차 지미 헨드릭스의 지금까지 듣도보도 못했던 혁신적인 음악을 기타와 물아일체의 경지에 다다른 듯 연주하는 장면을 본 후에 '기타를 접어야 하나...' 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리고 지미의 스킬과 곡 해석력, 감성을 따라잡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갖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영국의 록 계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의 록 음악이 발전을 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